연극 ㅡ비프
(2021년 2월 21일 관람)
버지니아 공대 대학살이라 불리던 총기사건의 범인은 한국인 이민자 1.5세대인 조승희였다.
당시 영문학도였던 조승희의 작문과 극본은 증오로 가득했고 매우 위험했다고 지도교수가 진술했다고 한다.
연극 비프는 이런 조승희의 대본을 가지고 "악인의 작품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연극을 하는 외곽의 국제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부유한 집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서 영어교사인 동우가 연극반을 이끌고 문학교사인 영준은 동우의 파트너이자 지수와 세희의 담임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세희 곁을 맴돌며 동우와 영준을 관찰하고 지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유진도 함께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
5명의 배우가 90분동안 풀어나가는 연극 비프는 팽팽한 긴장감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보러가기 전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해서 기대는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이상이었다.

굉장히 낯이 익은 이준혁배우는 여유와 능청으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뮤지컬 렌트에서 엔젤역으로 만났던 김지휘배우는 비프에서의 연기가 더 잘 맞는 옷 같았다.
(동우, 영준, 세희는 트리플캐스팅이다.
마리퀴리에서 인상적이었던 양승리배우의 영준연기도 궁금하긴 하다.)
무엇보다 표정과 말투로 비죽거림과 분노와 감정의 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고교생 역의 세 배우의 연기는 감탄스러웠다. 얼마나 연구하고 연습하고 고민했을지 느껴지는 모습덕분에 굉장히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열쇠소리와 더불어 끝나는 마지막 반전까지 배우들은 너무나 멋졌고 여운이 매우 짙었다.


내가 이 공연을 본 날은 일요일 낮공이었다.
중년의 남녀 여러분이 관극을 오셨는데 관람태도가 앞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공연시작도 늦어져서 공연 앞뒤로 수업이 잡혀있던 나는 내심 초조해지기도 했었다. 단체로 지각입장한 뒤에는 영어대사가 많아서인지 그 작은 소극장에서 졸고 하품들하시는데..이 훌륭한 연극의 유일한 티는 그 관객들이었다.
대학로에서 돌아올때 살짝 택시를 탄 구간이 있는데 창밖의 날이 몹시 좋은 일요일이었다.
이 좋은 날씨, 관크의 습격이 있었지만 훌륭한 작품을 만나서 기쁜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