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중고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ㅡ얘들아 곰하면 뭐가 떠오르니?
물어보자 0.1초만에 답이 나온다.
ㅡ마늘이요
너희들, 의외로 역사적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곰에 대해 역사적으로 좀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유럽에서 용맹의 상징은 사자가 아닌 곰이었다.
베를린, 베른처럼 곰에서 딴 도시이름도 많고 오래된 가문의 문장에도 곰이 등장한다.
심지어 전설적인 만화 베르세르크는 곰의 탈을 쓴 전사란 의미다.
과거, 유럽인들은 평생을 한 마을 안에서만 살았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빽빽한 숲들이다. 숲에는 빌헬름 텔과 같은 의적과 산적 또는 마녀(라고 불리는 노파들)가 산다.
그리고 곰이 산다.
곰은 사람을 찢어죽인다.
곰이 한 손으로 풀스윙하면 사람의 목이 날아간다.
유럽 사람들에게 곰은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고 공포는 곰을 숭상하게 만들었다.
숭상의 대상은 곧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눈에 보이는 숭배 대상인 곰은 박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한반도에서 조선이란 나라가 지엄한 왕권을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사냥해서 호랑이를 멸종 시킨 것과는 달리 유럽의 곰은 무시무시한 맹수가 아닌 영리한 서커스 동물과 만만한 푸우로 변신하면서 종의 생명을 이어간다.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곰을 인류는 귀여운 친구로 끌어내렸다 .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반항의 역사같다.
언제나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에 대한 반발이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하게는 부모에 대한 반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독재자에 대한 반발 그리고 자연에 대한 반발이 오늘의 문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반동의 역사가 곧 인간일 것이다.
그 반동을 노여워하며 잔소리 하고 싶으면 꼰대,
반동의 생각을 이해하고 여유롭게 지켜보는 게 어른이라 생각된다.
곰을 생각하면서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다짐을 앞에 두고 주춤거린다.
나는 어른보다는 책읽는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ps :
사실 곰이란 단어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야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는 나에게 곰하면 우리 팀과 잠실 구장을 나란히 쓰는 그 시커먼 것들이 생각난다.
곰이란 주제어를 두고 야구로 글을 쓰면 동어반복이 많아질 것 같았다. 챗gpt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아직은 사람의 생각이 더 풍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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